The analects, by Confucius
논어, 윤홍식 저

논어가 말하는 양심은 무엇인가?
tl;dr
공자는 ‘인간의 길’에 대한 답을 사랑, 정의, 예절, 지혜의 ‘양심’에서 찾고, 이를 체득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6p)
윤홍식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항상 많이 배우는 것 같다. 간단하지만 깊어서 생각해보고 적용할 점이 많은 것 같다. 마음에 와 닿았던 문구 위주로 정리해봅니다.
一以貫之, 일이관지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자공아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습니다. 아닙니까?”, “아니다. 나는 오직 ‘하나’로 꿰뚫었을 뿐이다.“라고 하셨다. by 논어, [위력공]
우리가 어떤 일을 처리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때 늘 양심에 비추어 보아, 그 옳고 그름을 자명하게 판단한 뒤에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양심을 계발하는 첩경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양심이 계발되면 수많은 지식이 자연히 하나로 꿰어지고, 언제 어디서나 나와 남 모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10p)
자공이 “한 마디 말로서 종신토록 행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그것은 ‘서’(인자할 서)이니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가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by 논어, [위력공]
인자한 자는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세워 주고, 자기가 이르고 싶으면 남도 이르게 해 준다. 자기를 살펴 남의 입장을 이해 하는 것, 이를 ‘사랑의 올바른 방법’이라 말할 수 있다. by 논어 [옹야]
그러니 남을 나 처럼 여기는 사람은, 내가 우뚝 서고 싶은 만큼 남도 우뚝 서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하여, 남도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이처럼 남의 욕망에 깊이 공감하게 되면, 남의 마음이 자신의 마음처럼 공감이 되어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남의 성공을 돕게 됩니다. (13p)
먼저 ‘내가 남에게 바라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이 나에게 바라는 것을 정확히 헤아려 남에게 베푸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랑을 실천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남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면 남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중략) 사랑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남에게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가하지 말며, 남에게 바라는 것을 남에게 베풀라!“라는 양심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14p)
“정성스러운 자는 힘쓰지 않아도 적중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답을 알아내며, 언제 어디서나 차분하고 침착하게 ‘중도’를 걸으니 바로 ‘성인’이시다.” by 중용
Knowing
인간에게는 옳고 그름을 자명하게 분별하는 ‘보편적인 판단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배우지 않아도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분명히 구별해 낼 수 있습니다. 맹자는 이것을 ‘양심’중에서 양지
(타고난 판단능력)이라 불렀습니다. 이 양지의 발현이 바로 ‘시비지심’입니다.
"(중략) 그래서 다른 모든 것에 있어 까다로운 사람도 양지에 있어서는 자신의 것 이상을 바라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 올바르게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능력이 바로 양지이며 이성이다” by 데카르트 [방법서설]
모든 일에 대해 다만 ‘옳고 그름’을 살펴볼 뿐이다. 가령 오늘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스스로 마음이 편안하고 의심이 없다면 그것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이라도 스스로 믿을 수 없다면 그것은 ‘그릇된 것’이다. by 남송 주희 [주자어류]
자신의 인지과정을 점검하는 내면의 인지능력을 ‘메타인지’라고 부릅니다. 메타인지는 ‘인지과정을 인지하는 능력’ (중략) 이러한 메타인지가 편견에 의해 왜곡되어 건강하지 못하면, 자신의 편견에 부합하는 것을 자명하다고 착각하게 됩니다.(23p)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유(자로)야, 너에게 안다는 것에 대해 가르쳐 주마.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by 논어 [위정]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뛰어난 것’이요,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병’이다. 대저 오직 ‘병’을 병으로 여겨야 병이 없다. 성인은 병이 없으니, 병을 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병이 없다. by 노자
그 사람은 모르면서도 뭔가 안다고 생각하나,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나는 그 사람보다 ‘지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by 소크라테스의 변론
1)남에게 들었다고 옳다고 여기지 말고, 2) 예전부터 전해내려 왔다고 옳다고 여기지 말고, 3) 소문을 듣고 옳다고 여기지 말고, 4) 자신이 따르는 경전과 일치한다고 옳다고 여기지 말고, 5) 추측으로 옳다고 여기지 말고 6) 체험이 없는 추론을 근거로 옳다고 여기지 말고 7) 논리적이라는 이유로 옳다고 여기지 말고 8) 자신의 사유의 결과와 일치한다고 옳다고 여기지 말고 9) 권위 있는 이가 말했다고 해서 옳다고 여기지 말고 10) 존경하는 수행자가 말했다고 해서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by Buddha [칼라마(Kalama-sutta)경]
All you need to say is simply ‘Yes’ or ‘No’; anything beyond this comes from the evil one. by Jesus, [matt 5:37]
효
유자가 말하길 “그 사람됨이 효성스럽고 공경스러우면서 윗사람을 침범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드물며, 2) 윗사람을 침범하기를 좋아하지 않고서 난리를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자는 있지 않다. 군자는 근본(효,제)에 힘써야 하니, 근본이 확립되면 ‘도’가 자연히 발현된다. 효성스럽고 공경스러운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근본일 것이다.” 라고 하였다.
내가 가족이나 남을 위해 뭔가 작은 것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지를 한번 돌아보면서, 그날 하루를 자신의 양심에 충실하게 사는 훈련을 해 보세요.
하루에 하나라도 좋으니, 자신의 ‘생각, 말, 행동’을 재료 삼아 양심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보세요.
‘양심 작품’을 창조하는 삶은 곧장 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양심이 있으니까요. 이러한 창작이 이어지다 보면 뭔가 좋은 생각이 더욱 떠오르고, 인생의 활로가 보이고, 세상을 바꿀 힘도 생길 것입니다. (47p)
교언영색 (교묘한 말고 꾸민 얼굴)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색을 예쁘게 꾸미는 사람치고 인자한 사람이 드물다.“라고 하셨다.
정말로 양심적이라면 욕심꾼과 내가 둘 다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버리기 때문에, 욕심꾼이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도 그런 자명하고 강력한 양심을 추구하시기 바랍니다.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들고 자신을 피해자로 만드는 일이 양심적일 수는 없으니까요. (53p)
조화와 절제
유자가 말하기를 “예절을 쓸 때에는 ‘조화’를 귀하게 여긴다. (중략) 그러나 절대로 행해지지 않을 것이 있으니, 오직 조화만 알고 조화만을 추구하여 예절로서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예절에는 조화
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예절
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서로를 배려하고 조화롭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니까요. 예절은 5행 중에서는 ‘불’의 덕목이고, 계절로는 여름의 덕목입니다. 여름에는 만물이 자기 안에 있던 것을 훤히 타오르는 불처럼 밖으로 표현합니다.
겨울에 씨앗으로 존재하던 것이 여름이 되면 아름드리나무가 되고 꽃이 되어 자신의 속을 완전히 드러내죠. 그런데 만약 조화
가 없이 각자대로 자기표현만 중시한다면 전체는 엉망이 될 것 입니다. 서로를 배려해 가면서 자기 소리를 내야만 전체적인 하모니가 이루어지니까요.
그런데 유자는 오직 ‘조화’만 중시하면서 서로 ‘절제’를 하지 않으면, 또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절에는 조화가 중요하지만, 그 안에 반드시 절도나 절제가 있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절이 본래 조화를 추구하지만, 절제를 잃어버리면 크게 방탕해지는 결과를 낳을 수가 있으니까요.
예절에는 절제가 중요하지만 그 안에는 반드시 이런 ‘조화’와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예절은 남과 조화를 이룰 수 없고, 결국 살벌한 형식만 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07p)
정의와 예절과 사랑
유자가 말하기를 1)약속이 ‘정의’에 가까워야 그 말한 바를 실천할 수 있으며, 2)공손하더라도 ‘예절’에 가까워야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 3) 이로 말미암아 친애하는 이들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또한 숭상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예절에 합당하지 않으면 치욕스러운 일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 지나치게 공손한 것은 옳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예절에 맞는다면 사실 당당해야 합니다. 내가 당당하게 남을 배려해 주는 것이 예절인데, 공손함이 지나치면 비굴해질 수 있죠.
자신이 비굴해지는 것은 양심에도 맞지 않는다고 느낄 겁니다. 그런 행동은 하고 나서 본인 뿐만이 아니라 받은 사람도 찜찜해집니다. 양심에 찜찜한 것은 그런 행위가 결국 ‘욕심’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공손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오히려 일을 망치는 것이죠. (114p)
학문을 좋아하는 자세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1) 군자가 음식을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으며, 2)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고, 3) 일을 실천함에 민첩하며, 4) 말을 삼가고, 5) 도가 있는 이에게 나아가 바로잡는다면, 가히 학문을 좋아한다고 이를 만하다.“라고 하셨다.
군자는 말이 실천보다 앞서지 않게 항상 조심합니다. 자신의 행실이나 역량보다 말이 앞서면 결국 ‘거짓’과 ‘사기’가 됩니다. 사기꾼이란 게 별게 아니라, 말을 세게하고 실천이 약한 사람을 말합니다. 말이 역량 이상으로 과한 것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말이 실천보다 과한 것입니다. (121p)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남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라고 하셨다.
예절
: 처한 상황을 있는 그래도 진심으로 수용하고, 생각과 언행이 겸손하며 상황과 조화를 이루었는가? (134p)